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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앞얘기, 뒷얘기/임소정의 '사이언스 톡톡'

'북한의 과학기술' 하면 떠오르는 것은


까놓고 말해서, 평균 생활수준으로 비교할 때 남한이 북한보다 좀 살만 합니다.

언론을 통해 간간히 접하는 북한의 모습은 최소 우리의 20~30년 전 풍경과 흡사하죠.

최근 모습이 공개된 김정일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부의 상징’인 뱃살이 강조된 모습을 보여줬지만

서민들의 삶으로 볼 땐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게 정설일 겝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없고 북한엔 있는 것도 있죠.

한반도 안보문제의 핵심인 핵무기

우리는 미사일이라 부르는 인공위성 기술입니다.


핵이야 뭐 강대국 몇나라에서 자기네는 되고 딴데는 안된다고 우기는 바람에

국제적 왕따가 아니면 만들기 어려운 게 현실이죠. (아아 왕따를 부러워하지 말지어다)

인공위성 기술은 우리나라도 위성까진 만드는데 발사체가 난관입니다.

우리에겐 뼈아픈 두 번의 실패를 주긴 했지만,

어쨌건 러시아는
1998~2005년 사이 우주발사체를 쏘아올린 횟수로 미국을 이겨먹은 1등이라네요.

러시아 아싸 일등? 미국과 박빙입니다.


북한의 경우는 ‘광명성 2호’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위성이라 쳐도 궤도진입에는 실패한 듯 보입니다. (외신들에 따르면요)





여기에 북한이 자랑하는 기술이 하나 더 있는데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 'CNC'기술입니다.

CNC는 정밀부품 생산에 활용하는 컴퓨터 수치제어 조작에 필요한 기술인데

일본, 독일을 앞세운 약 10개 이내의 나라에서 활용하고 있다네요.


공작기계의 서체가 아주 고풍스럽네요! (출처: 연합뉴스)



북한은 이 CNC를 주체공업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1~2년 전 5축 공작기계를, 올 9월에는 9축 공작기계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는데요.

9축이면 세계 5위권 이내에 드는 기술수준이라고 하네요.

(축의 수는 x,y,z 3개의 축과 나머지 회전축을 포함합니다.)

회전수가 1000에서 10000에 달하는데, 이 정도면 우라늄 원심분리가 가능한 정도라서

핵무기 기술도 덩달아 증명하는 셈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CNC는 올들어 평양 시내 유명 백화점 앞에 걸린 선전물에도 등장했다는군요.

그리고 요즘 북한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온다는 노래 중에 

<돌파하라 최첨단을>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lyo_MgBAxFM 녀성8중창단 라이브!)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래 가사 곳곳에 CNC가 지겹도록 등장합니다.

'주체공업', '장군님', '지식경제 시대', '우리식 CNC기술' '아리랑 민족의 자긍심으로'...

<발걸음>과 함께 김정은의 업적을 높이고자 하는 노래인 만큼 가사가 '초큼' 부담스럽지요.



하지만 이 노래,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자꾸 들으시면 위험해요.

저는 딱 두번 들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 거의 강강술래나 쾌지나칭칭처럼 빙빙 돌고 있네요.

어쨌건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

북한의 CNC 기술이 자기네가 주장하는 것만큼 대단한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북한의 후크송 작곡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듯합니다!



CNC라는 영문이니셜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눈길을 끄는데요.

해외유학파 김정은의 국제감각을 강조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북한도 이제는 모든 영어를 한글로 바꿔쓰는 작명은 포기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얼음보숭이도 실패한 작명이라며 아이스크림을 그냥 쓰는 사람이 많다네요.



아참, CNC기술이라는 거 우리는 못 하나 궁금하실텐데요.

우리나라에도 80년대에 도입되어서 참여정부 때 관련 정책도 세웠던 모양입니다.



어쨌건 북한이 스스로의 주장대로 CNC 첨단기술을 갖췄다한들

주민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북한이 저토록 CNC를 강조하는 이유는

북한 과학기술의 역사적 배경에서 찾아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날론이라고 혹시 기억나시나요?

서울대 공대 학장으로 있던 시절 북한의 줄기찬 설득에

학생들을 우르르 데리고 월북했던 리승기 박사가 교토대학 시절에 개발한 합성섬유입니다.

석탄과 석회석으로 만든 비날론은

석유로 만든 나일론보다 수분흡수가 좋고 면섬유와 비슷한 질감을 가졌는데

북한에서 대량생산 체계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게 월북의 조건이었던 모양이에요.

"빛나는 비날론입네다" 김위원장의 지난 여름 2.8비날론연합기업소 시찰 (출처:조선중앙TV/연합뉴스)



비날론 또한 CNC처럼, 북한이 첨단을 자랑할만한 것이기는 했습니다.

북한 내에서는 주체섬유라고 부를 만큼 숭상 받았지요.

리승기 박사는 김일성 위원장 바로 뒤에서 찍은 사진이 있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리 박사가 아플 때 김 위원장이 산삼을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지요.


그러나 비날론이 뛰어난 섬유일지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특수분야 외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북한에게 중요한 것은 첨단기술 혹은 원천기술의 보유라는 자긍심 자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방 직후부터 북한은 과학기술을 장려해왔습니다.

동구권 유학을 장려하던 시절을 지나

1950년대 후반부터는 소련과 선을 긋고 와 원료, 그리고 기술의 자립을 외쳤죠.

그리고 생산현장에서 교육하는 공장대학을 만드는 등 현장지향성을 강화하면서

당시 비날론 외에도 려경구의 염화비닐, 주종명의 함철콕스 등 여러 성과를 거둡니다.



1950년대말 북한은
과학발전 10개년 전망계획을 통해

40%를 훌쩍 뛰어넘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의 성장률은 10%를 밑돌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내내 과학기술을 숭상해온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 후반 몇 년간 갑자기 북한의 과학논문 발표가 ‘0’이 됐던 적이 있습니다.

당파투쟁으로 인해 고 김일성 국방위원장이 과학기술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원로 과학자들을 지방으로 좌천시키고 과학기술 학회지를 불태우기도 했던 시절입니다.



70년대부터 제2경제로 분리된 군수경제는 

꾸준히 우수한 과학기술역량을 수혈받아 무럭무럭 자랐지만

과학기술 자체는 김정일 위원장이 실권을 잡기 전까지 일종의 암흑기를 보냈습니다.


김씨 부자의 커플룩. 최근 자강도 시찰 풍경. (출처: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요즘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외치고 있는데요.

자강도로 산업시찰의 발길이 자주 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강성대국 진입을 이룰 세가지 기둥으로 사상, 총대, 과학기술을 들고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과학기술‘사상’이라는 말도 등장했는데

‘주체사상’처럼 과학기술의 지위를 사상급으로 높여놨다이야깁니다.



그러나 군수분야를 제외한 민간분야에 과학기술의 기여도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게 평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랑할만한 성과에 너무 집착한 것인지

아니면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느라 나머지는 버리는 집중과 선택의 결과인지 모릅니다만

정상적인 무역에 의존할 수 없는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척박한 기후와 토양에서도 잘 자랄 농작물이나 농업기술일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러고보니 우리나라도 최근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신설되면서

과학기술계 안팎의 기대가 높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위원회의 수장이라는 것에 위험부담도 크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국가주도 과학기술정책은 그 방향성에 따라 자원과 돈의 배분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북한의 경우에서 교훈을 얻어보자면

아무 첨단이나 말고 보편을 지향하는 첨단을 돌파해야할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임소정 기자 (
트위터@sowhat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