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커피 관련 뉴스를 전해볼까 합니다. 한달에 몇잔 먹는지 실험중인 추리작가 추리닝 선배의 책상. 이러니 던킨 단골이벤트도 대략 순위권. 다방커피 말고 에스프레소와 계란 노른자의 조합은 어떤 맛일까요? (에스프레소 사진은 위키피디아)
과식 후 더부룩할 때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곤 하지만, 사실 커피가 위벽을 자극해 위산과다를 만든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저도 가끔 하루 석잔 이상 아메리카노를 집중투여할 때가 있는데, 위염이 재발할까봐 조마조마 긴장하곤 합니다. (그룹 10cm의 <아메리카노>를 벨소리로 쓰는 부작용인지 식후땡으로 한사발씩 안먹으면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몇달 전 출근길에 좀 쇼킹한 뉴스를 접했어요. <60-second science>라는 팟캐스트에서 미국화학회에서 3월21일 발표된 ‘진한 커피가 위를 행복하게 한다’는 내용이 소개됐거든요.
언뜻 보기엔 정반대여야 할 것 같죠? 진하게 마시면 위벽을 더 자극할 것 같고, 위산도 더 많이 나와 속쓰릴 것 같잖아요. 만일 진한 커피가 위벽을 덜 상하게 한다면 이젠 다방 언니는 모닝커피에 계란노른자 대신 커피 한스푼을 더 넣을까 고민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의 베로니카 소모자 박사와 독일 뮌헨기술대학의 토마스 호프만 박사는 위장친화적인 커피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연하게 볶은 커피, 진하게 볶은 커피, 디카페인 커피 등 몇가지 커피를 실험실에 배양한 위세포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는데요.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위산분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카페인과 카테콜 등 여러 성분의 조합이라는군요. 카페인 같은 단독 성분이 아니라 이 성분들의 비율이 영향을 준다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중 "진하게 볶은 커피에 많이 들어있는 N-메틸피리듐(NMP)이라는 성분이 위세포의 염산 생성을 줄인다"는 내용이 눈길을 끄는데요. ‘진하게 볶을수록’ 검출되는 NMP의 양이 늘어난다는군요. 일단 올 연말까지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원두와 볶는 방법 종류를 다양하게 해서 NMP의 효과를 검증한다고 했었는데, 벌써 연말까지 한달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좋은 소식을 기대해 봅니다. 저를 달달 볶아주세요, 제발 좀 착해지게... (출처:위키피디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홈피 캡춰
실험이 잘 되면 “빈속에 내려드세요. 이젠 속쓰림 끝, 위장 건강까지 생각한 커피” 이런 광고를 하는 원두도 판매할 지 모르겠네요. 집에 에스프레소머신과 그라인더까지는 있더라도 커피콩을 직접 볶으시는 분은 드무니 대박날 수도 있겠습니다. 저처럼 탄맛을 좋아하시는 분께는 희소식일까요?
참고로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호주 뉴질랜드 쪽에서는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물과 에스프레소를 넣는 순서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는데요. 에스프레소 넣고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 물을 넣고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롱 블랙'이라는군요. 물을 넣고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크레마(거품)가 덜 사라지고 향도 더 진하다는데, 이건 쏘맥을 만들 때 소주를 먼저 부어야 맥주 거품이 안 생긴다는 저희 시아버님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효과로군요. (소주 왕창에 소량의 맥주를 순서를 바꿔 붓는 실험을 해보면 커피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걸 누가 마시냐고요.)
그러고보니 우리 회사 앞 커피집들은 대체로 물 위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주는 것 같은데요. 저는 알고보니 매일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롱블랙을 마셨었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60-second science>는 1분 남짓의 과학뉴스를 들려주는 꽤 쓸만한 팟캐스트입니다. 미국의 대중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www.scientificamerican.com)에서 만들고 있죠. 꽤 빠른 영어로 쏼라쏼라하기 때문에 잘 못 알아들으니까 여러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요, 짧고 쉬운 과학뉴스를 잘 골라 알려주니까 흥미로운 주제를 꽤 만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진행자 중에서도 “이거 따~악 1분 걸린다”고 말하는 캐런 홉킨 언니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니 젤 맘에 들고요. 들어보고 싶다면 <60-second science>를 클릭하세요.
소개하고 보니 저는 좀 들은지가 오래됐습니다.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기 전까지 꽤 오랫동안 1세대 아이팟 터치를 가지고 놀았는데, 그때만 해도 편했거든요.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하면서는 팟캐스트 앱을 몇 개 시도해보다가 맘에 들지 않아서 방치하게 되더군요. 업그레이드 하고 어쩌고 하면서는 아직 다시 받지도 못했네요. 팟캐스트 사용은 애플 쪽이 확실히 편합니다.
어찌됐건 잊지마셔야할 것은 아까 그 연구에서의 진한 커피라는 게 농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저 실험의 결과는 "진하게 볶은 커피가 위장을 덜 자극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방언니는 당분간 하시던 대로 계란 노른자를...
임소정 기자 (트윗 @sowhat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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