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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앞얘기, 뒷얘기/임소정의 '사이언스 톡톡'

냉온탕 오가는 지구의 미래

 

 

2003년 WTO회의가 열렸던 휴양지 멕시코 칸쿤을 기억하시나요? WTO 반대시위 도중 농업개방에 반대하던 우리 농민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그곳 말입니다. 지금 칸쿤에서는 제16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29일 개막, 12월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총회의 가장 큰 목표는 2012년 효력이 다하는 교토의정서 이후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칸쿤은 개도국까지 포함한 온실가스 총량과 국가별 감축량 문제를 담는 새 프로토콜을 만드는 중차대한 역할을 어깨에 지게 됐습니다. 각국 정상들 대신 장관들만 참석한 회의에서 말이지요. 이게 다 지난해 코펜하겐총회가 ‘지구 온도 상승을 2도로 제한하자’는 숫자만 덜렁 내놓으며 구체적 합의를 칸쿤으로 넘겨버린 덕분입니다.

 

칸쿤에서 열리는 16차 총회 홍보물. AP


선진국은 중국, 인도 등 개도국에 희생을 요구하고, 개도국은 선진국에 과거를 책임지라고 서로 떠밀다보니 합의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러다 '교토의정서 이후' 문제를 내년 요하네스버그 총회로 그대로 넘길 거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많고, 새로운 의정서를 만들어도 발효될 때까지 수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교토의정서 연장이 그나마 최선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초반에 들려오는 소식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교토의정서에 가입을 하지 않았던 미국과 ‘세계의 공장’ 중국이 사이의 대화에 조금 진전이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중앙아메리카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벨리즈의 한 산호초섬에서 환경운동가들이 만든 글씨. 칸쿤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됐다. AP연합뉴스


기후변화협약 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어디인가요? 아마 리우데자네이루와 교토 겁니다. 기후변화협약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됐습니다. 일명 지구회의, 좀 더 확장해서 리우회의라고도 부르는데, 당시 말은 많고 행동은 없는 ‘사상 최대의 칵테일파티’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전세계가 기후변화에 대해 처음으로 함께 논의했다는 상징성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 때 리우선언, AGENDA21, 생물다양성보존협약 등도 함께 채택됐는데, 이 중 리우선언은 ‘지속가능성’(혹은 지탱가능성)이라는 말을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지속가능성은 예전에 아르케이디언 운동을 다룬 글에서 살짝 언급했던 유틸리테리언 운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따로 한번 정리해보기로 하고요.


그보다 더 주목받는 이름은 1997년 3차 총회가 열린 교토입니다. 그 유명한 교토의정서 덕분이죠. 교토의정서는 38개 회원국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2% 감축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불화탄소(PFC), 수소화불화탄소(HFC), 불화유황(SF6) 등 6가지 가스를 감축대상으로, 에너지효율 향상과 신·재생 에너지 개발·연구 등 온실가스 감축 정책과 조치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1995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1회 총회가 열린 베를린도 교토만큼 주목을 받진 못했습니다. 국제회의가 가죽이건 이름이건 남기려면 자고로 제대로 된 합의 정도는 내놓아야하는 법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부 지자체와 정부가 내후년 18차 총회를 유치하겠다고 나선 모양인데 삽질로 빚은 4대강을 자랑하면서 국격을 논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린피스 회원이 캐나다 오타와의 의사당 앞에서 북극곰 의상을 입고 선탠하는 모습으로 온난화 경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 (2007, 로이터)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0 세계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2035년 온실가스 배출은 현재보다 21%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온실효과가 전혀 없다면 지구는 식고 말 겁니다. 지구가 식다니, 한창 온난화를 이야기하다가 웬 봉창 두들기는 소리냐 싶으시겠지만 BBC가 2005년 방송한 <Global Dimming>은 정말 지구가 식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물론 온난화에 아주 반하는 내용은 아니고요, 오히려 온난화를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다큐의 시작은 9.11 테러 다음날입니다. 한 남자가 출근길에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파란 겁니다. 당시 3일간 비행이 전면금지돼 있던 상황인데요, 뉴욕은 비행기편이 많이 오가기로 둘째가라면 서로운 대도시이고, 비행기가 내뿜는 수증기구름이 당장 사라지지 않고 하늘의 절반 이상을 채우기도 한다나봅니다.

그 남자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버리지 않고 오래 벼르고 있던 데이터를 얻게 됩니다. 비행기가 뜨지 않는 날 전후의 온도변화를 관찰한 건데요. 놀라운 수치가 나옵니다. 1도. 딱 3일간 비행기가 안 떴을 뿐인데, 1도가 높아졌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다른 과학자들로 넘어갑니다. 수십년 전에 했던 이스라엘의 일조량 관찰을 다시 시도했다가 엄청난 감소량에 깜짝 놀란 남자, 알프스의 일조량에서 똑같은 변화를 발견한 독일 여자, 수분증발량의 감소를 발견한 호주의 두 남자... 이들은 동일한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햇빛이 가려져 지구가 식고 있다”는 겁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rkJUJ5-PL-0
 

다큐에 따르면 대기 속의 오염물질들이 구름 속 결정들을 더 작게 만들어서 햇빛을 더 많이 반사시키는 거울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일조량이 줄고 햇빛 광자의 영향을 받는 수분 증발량도 함께 줄었다는 겁니다. 두 감소량의 수치는 단순한 계산에도 딱 맞아떨어진다는 주장입니다. 
  다큐는 이 일조량 감소가 아프리카 특정 지방에 가뭄을 불러왔던 원인이라고도 덧붙입니다. 계절변화에 따라 태양의 위도가 바뀌면 바닷물을 데우는 곳이 달라져서 구름대가 그대로 따라올라가야 하는데, 대기의 오염물질 때문에 바닷물이 데워지지 않고, 결국 구름대가 이동하지 않아서 비가 오지 않았다는 거죠. 그렇다면 오염물질 배출을 막아서 기후변화를 막아야할 의무가 생겨납니다. 아프리카의 우기가 변했을 때보다 아시아 우기가 변동하면 더 큰 재난이 오지 않을까, 다큐는 우려합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배기가스 오염물질을 줄이는 조치들이 선진국에서 시행되면서 오염물질의 문제는 점진적으로 개선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같은 개도국은 변수입니다만. 그런데 문제는 오염물질은 계속 줄어들고 온실가스만 늘어나는 경우에는 어떤 비극이 올까 하는 것입니다. 3일만 비행기가 안 떠도 온도가 1도 오른다는 건 엄청난 온난화가 햇볕가림으로 인한 온도저하 뒤에 숨어있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해물질을 늘려 온난화를 늦추려한다면, 대기오염으로 인해 인류와 나무가 병드는 것은 또 어쩌란 말입니까. 지구가 우리에게 "쪄 죽을래, 숨막혀 죽을래" 라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저 다큐를 본다해도 지구 온난화가 전지구적인 것인지 지엽적인 것인지, 인간 탓인지 지구 탓인지 단정짓기는 쉽지 않습니다. WMO와 UNEP가 1988년 만든 국제협의체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네 차례에 걸쳐 내놓은 보고서에 나온 기온, 빙하코어나 나무테 분석 데이터들도 어느 하나의 결론으로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진 데이터의 범위가 좁고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를 다뤘던 책들에서도 보셨겠지만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다만 인간 때문이건 아니건, CO2 때문이건 아니건, 지구 온난화가 불러올 생태계 변화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만약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온난화와의 전쟁에서도 결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비극이 반복될까 두렵습니다. 매년 여름 선풍기와 에어컨 아래에서도 메신저 닉네임에 "더위와의 전쟁 The War"라고 적고 있는 저는 너무나 평화롭게 살고있었던 게 아닐까요?
                                                                                                   임소정 기자(트위터@sowhat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