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여러 신문의 국제면에 해저 조각상과 오리발을 끼고 물 위에 동동 뜬 사람들의 사진이 실렸습니다. 칸쿤에서 열리고 있던 제16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를 겨냥한 환경운동가들의 퍼포먼스였는데, 해저 조각상 덕분에 왠지,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 온난화를 막지 않으면 인류가 물 속에 잠길 것만 같은 불안감도 들더군요.
이 조각상은 지난달 문을 연 수중박물관(MUSA; Museo Subacuatico de Arte)에 설치된 조각상들의 일부입니다. 내년까지 총 400개의 조각상을 설치할 예정이며 영국 조각가 Jayson de Caires Taylor의 작품이라네요. 일반 시멘트보다 10배는 단단하고 ph가 중성인 시멘트로 만들어진 이 조각들은 관광객에 몸살을 앓고 있는 천연 산호초의 부담을 덜고, 해저생물의 안식처가 되는 1석2조의 효과를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칸쿤 당사국 총회는 지난 주말, 2주 간의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녹색기후기금’ 조성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최소한 “기후변화 회의의 불씨는 살렸다”는 평가는 받았습니다만, 2012년 만료되는 ‘교토 의정서’ 이후에 대한 논의는 "교토 의정서 2기를 준비하되, 참여를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선에서 마무리됐다네요.
그나마 성과로 꼽히는 녹색기후기금 조성안은 당사국들이 개도국의 삼림 보호를 지원하고 청정 에너지 기술을 개도국에 이전할 비용으로 2020년까지 연간 1000억달러(약 114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개도국들은 녹색기후기금이 시혜성 ‘지원’이 아니라 지난 200년간 환경을 해처 먹은 ‘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특히 볼리비아는 “합의문에 선진국들의 재정기여 방안이 명시되지 않았다”면서 194개국 중 유일한 반대표를 던졌다고 합니다. 물고기 친화적인 동상들
삼림보호의 시작은 환경운동의 두 기류 중 유틸리테리언(Utilitatian) 환경보호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유틸리테리언 운동은 과학과 기술을 활용해 자연환경을 잘 관리해 오래 활용하자는 쪽인데, 자연 중심적이던 아르케이디언(Arcadian) 운동과는 달리 인간 중심적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아르케이디언(Arcadian) 운동에 대해서는 딕 프로네키의 30년 독수공방 이야기를 참조하세요. 클릭)
자연환경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건 19세기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선 자원이 필요하면 서부로 가기만 하면 됐고, 유럽에선 식민지를 더 만들면 됐습니다만, 더 이상 좋은 시절은 끝나버린 거죠.
미국의 초기 환경운동가로 불리는 조지 퍼킨스 마쉬는 1864년 <인간과 자연>이라는 책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이 퇴화한 것은 지중해 지역의 산림이 없어져 벌어진 사막화의 영향이며, 현대문명도 같은 패턴으로 망할 수 있다”면서, “과학기술을 활용해 이 과정을 돌이키자”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처럼 한정된 자원을 잘 관리해서 잘 살아보자는 뜻에서 처음엔 삼림 관리가, 그 다음엔 댐건설이 추진됩니다. 테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같은 경우는 사냥을 즐기기 위해 산림을 지켜야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죠. 아르케이디언 운동이 잠시 침묵하는 계기가 됐던 해치해치댐을 비롯해 댐 건설은 계속됐습니다.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건설한 후버 댐도 있겠고요.
조지 퍼킨스 마쉬(1801~1882)
이 유틸리테리언 진영에서 내놓은 최대 유행어가 ‘Sustainability’입니다. 흔히 지속가능성이라고 번역하는데요. 지탱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속’이라고 하면 냅둬도 그냥 굴러갈 것 같은데, ‘지탱’이라고 하면 왠지 온몸으로 노력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Sustainability라는 단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노르웨이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그로 할렘 브룬틀란드가 주도한 1987년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orld Commiss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WCED)'에 제출된 <브룬틀란트 보고서: 우리 모두의 미래>였습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현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되, 후세대 또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발전을 뜻한다”라는 내용이라는군요. 여성 최초 유엔 사무총장감으로 꼽혀온 브룬틀란드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역임했습니다.
요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생활습관을 덜 쓰고 덜 먹고 덜 소비하는 쪽으로 바꾸자는 목소리들이 높습니다. 물론 일부러 덜 쓰고 덜 먹지 않아도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구호 자체가 사치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밥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픈 제 책상에는 종종 '지속가능한 빵'이 높여있습니다. 3일쯤 지나도 맛은 멀쩡한데요. 가끔은 제 몸이 죽어서 썩지 않을까봐 겁이 나기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는 덜 쓰고 덜 먹어야할 텐데요.
p.s. 물론 지속가능한 빵의 최고봉은 맥도날드의 '불멸의 버거'겠지요.
임소정 기자(트위터@sowhat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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