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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앞얘기, 뒷얘기/임소정의 '사이언스 톡톡'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다?

'돈 버는 유전자' 따위 나는 없수다!


유전자 서열을 알려준다고 하면 누구나 솔깃할 듯하다. 그것도 싼 값에 알려준다면 금상첨화. 2003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된 후 1000달러 게놈 시대를 향한 경주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는 '100달러 게놈'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000달러는 잊어라" 이건 뭐 마트 뺨치는 최저가 선언!


DNA 서열은 내 미래를 알려줄 만능 지도일까. 앞으로 내가 특별한 병에 걸릴 확률은 없는지, 그래서 조심해야할 것은 없는지, 혹은 대충 막 살아도 편안하게 세상 하직할 수 있을지, 아니면 내 부모에게서 찾을 수 없는 나의 우유부단한 성격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DNA 속 A,G,C,T들의 조합이 한도 끝도 없는 이 물음들에 답을 준다면 내 인생 편해지고 살림살이 나아질까.


위에서 세번째 동양여자, 내 친구랑 똑같이 생겼어요. 흑흑 미국생활중 ABC(american born china) 소리를 듣던 100% 한국녀.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2009년 1월 뉴욕타임스 인터넷에 실린 <My Genome My Self> 라는 글에서 개인 유전자 프로젝트(PGP)로 시작된 개인 유전학을 초기의 인터넷에 비유하며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는 함정’을 가졌다고 말한다. 개인 맞춤 의학시대를 열 수도 있지만, 영화 <가타카>에서처럼 정보의 접근이 인간을 차별할 위험도 상존한다는 것이다.


97년작 영화 <가타카>. 이 시절만 해도 우월한 유전자의 상징이었던 주드 로는 이제 대머리 유전자의 상징. 아참 에단호크와 우마서먼은 이 영화로 결혼했지만... '갔다가' 돌아왔죠 아마?


유전자는 기질과 취향, 생각패턴과 능력에 대해 힌트를 줄 수 있다. 하지만 핑커는 유전자 정보에 대해 결정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자신의 유전자 서열 검사 결과 중 치명적 유전병과 관련한 정보 하나는 보기를 거부했고, 어떤 정보에 대해서는 친척들에게 검사를 권유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유전자 정보는 확률적이다. 유전자 서열 분석은 임신진단키트의 선 숫자를 세는 것과는 다르다. 함께 분석한 집단을 믿을 수 있어야 최상의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이 판단도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핑커는 개인 유전학이 별자리 점보기 같은 매력을 지녔다고도 말한다. 빨간 머리가 될 확률이 높다한들 지금 내가 갈색머리일 수 있고, 쓴 맛에 민감한 유전자를 가졌다 해도 그 쓴맛을 적절히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개인 유전자가 그닥 많은 정보를 주지 못하는 ‘지노의 역설’은 키와 관련한 유전자에서도 드러난다.


심리학자의 게놈분석 체험(http://www.nytimes.com/2009/01/11/magazine/11Genome-t.html?scp=12&sq=genome+sequencing&st=nyt)


키는 유전적 영향이 크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키와 관련된 유전자가 선택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2%에 불과하다. 겨우 1인치 차이, 유전자가 주는 개성의 크기가 이 정도다. 대머리가 아닌 사람에게 대머리가 될 확률이 80% 높은 유전자가 있다는 것은, 그가 80% 대머리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전혀 모를 때 내가 대머리라고 확신할 정도를 0에서 10까지 표현하면 8이어야 한다’라고 해석해야 옳다.


개인 유전학이 언젠가 심리적 특성까지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게 된다 해도, 개성의 생물학적 원인에 대한 통찰을 높이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추측을 낮추는 것 외에는 달라질 것이 없을지 모른다. 핑커는 ‘나의 유전자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라는 핑계는 ‘가난해서 타락했다’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유전자 분석은 호기심적 차원에서 즐기라고 한다. 대신 콜레스테롤 위험은 실제 콜레스테롤 수치 검사로, 셈 능력은 수학 테스트로 검사하라고 추천한다.


"내 탓이 아니라니깐요" Wayne Stayskal, Tampa, FL (From The Tampa Tribune)


개인 유전자 서열 분석 비용은 점차 낮아질 것이다. 인종주의의 피해자였던 유대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유전자 정보의 열렬한 소비자라는데, 유대인 다음으로 머리가 좋은 민족이라는 알 수 없는 주장을 맹신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열기도 만만치 않을 듯하다. 


"어머, 그런 DNA랑은 결혼 못해"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 내게, “종합검진 할래 유전자 서열 검사 할래” 묻는다면 나는 유전병이나 기질에 대한 궁금증 대신 다른 호기심으로 한번쯤은 고민할 법하다. 부모님마저 “너 참 동남아다”라고 말씀하시는데, 혹시 내 유전자 속에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고 돌아온 인자는 없는 것일까. 핑커가 자신의 DNA 속에서 2000년 전 자기 선조들이 중동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경로를 읽어낸 것처럼, 나도 내 뿌리가 궁금하다. 

임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