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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입속의 붉은 잎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요플레 뚜껑 뒤를 핥을 때 필요한 기관은 혀다. 풍선껌을 한껏 부풀릴 때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하려고 입술에 침을 바르는 순간에도 혀가 없었다면 어찌해야 했을지 난감하다. 아이들은 겨끔내기로 혀를 동그랗게 말 수 있는지 장난치며 논다. 혀는 약 3000개의 미뢰를 가진 맛을 느끼는 감각기관이지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운동기관이기도 하다. 혀가 8종류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근육의 양쪽 끝 모두가 뼈에 닿지 않는 유일한 기관이어서 우리는 자유로운 혀끝이 코에 닿게 할 수도 있다.

 

혀는 입속에 들어 있다. 입이 없다면 혀가 있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소화기관의 최전선에 있는 동물의 입은 턱과 이빨을 갖추고 입안으로 들어온 먹잇감을 꽉 눌러 붙잡아 초주검을 만들어서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는 역할을 한다. 이와 턱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대체 혀는 무얼 하고 있을까? 과학자들은 다소 허망한 답을 내놓았다. 음식을 씹다 부주의하게 입이 열릴 때 중력에 의해 먹이가 밖으로 밀려 나오거나 떨어지지 않게 막는 뭔가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혀라는 것이다. 정말 그것뿐일까?

 

양양 남대천에서 잡히는 칠성장어는 입 뒤에서 배 쪽으로 일곱 개의 구멍이 났고 턱은 없지만 둥근 입안과 혀에 이빨이 있어서 먹이의 피부에 상처를 내고 세게 빨아들여 체액을 먹어 살아간다. 반찬으로 나온 조기의 혀를 눈여겨본 적은 없지만 물고기에게도 혀는 있다. 대표적 사례는 어류의 입안에서 혀 대신 살아가는 ‘키모토아 엑시구아’라는 기생충의 존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어류의 입속에 침입하여 혀를 괴사시키고 그 공간을 차지한다. 거기서 기생충은 물고기 입안으로 들어온 먹잇감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간다. 상상하면 섬뜩할 노릇이지만 물고기는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고 한다. 기생충이 혀 노릇을 제법 잘한다는 뜻이다. 숙주 물고기는 기생충을 자신의 혀처럼 움직일 수 있고 맛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먹을 때 손을 최대한 활용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목과 길쭉하게 늘인 입을 움직여 먹잇감을 찾아간다. 닭의 부리는 우리 손이 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이 물고기를 먹을 때는 부리로 먹이를 물어 고개를 들고 자리를 잡은 다음 식도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때 혀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악어는 큰 입으로 먹이를 붙잡고 먹이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통째로 삼킨다.

 

이에 반해 우리 인간은 음식물을 잘게 씹어 식도로 넘긴다. 수저로 고봉 뜬 밥이 혀 위에 안착하면, 다음은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는 위아래 앞니, 송곳니, 어금니 사이에 음식물을 놓고 어긋나지 않게 근육을 움직여 턱을 당길 차례다. 이가 바삐 움직이는 틈에 손으로 떡방아 모양새 잡듯 혀는 자르거나 으깨는 이빨 위에 음식물을 얹어 놓는다. 씹은 것은 혀와 이빨 그리고 턱과 근육이 한뜻으로 움직여야 비로소 가능한 어려운 일이다. 2019년 미국 시카고대학 연구진은 씹는 기관의 정교한 움직임을 관장하는 말굽 모양의 설골(舌骨, 목뿔뼈)이 1억6000만년 전에 진화했다는 화석 증거를 찾아냈다. 화석의 주인공은 공룡을 피해 살아가던 포유류의 조상이었다. 생쥐만 한 이 조상생명체는 곤충은 물론 과일과 어린 잎을 먹이로 혀를 조탁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경직된 구조의 원시 설골을 갖는 조류와 파충류는 혀와 목 근육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 제약이 따른다. 포유동물은 설골 덕택에 턱을 완전히 벌리고 목의 각 부위 근육들을 움직여 빨고 삼키고 숨 쉬는 일을 묵묵히 해낸다. 포유류 동물의 새끼들도 설골의 도움을 받아 어미의 젖을 힘차게 빨아댔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물고기도 인간에게도 혀가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집단은 각기 노출된 환경이 다르다. 물고기는 입 공간을 늘려 압력을 낮추고 물살과 함께 먹잇감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접시 위에 있는 고깃점을 절대로 빨아들여 올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도구를 써서 먹이에 접근한 다음 혀와 이를 이용해 먹이를 식도로 운반하는 과정을 진화시켰다. 뭍과 물의 경계에 사는 망둑어는 입안에 머금은 물을 투망처럼 던져 먹이를 감싼 다음 물과 함께 먹이를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수선스러운 과학자들은 이들이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물 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이 염천에도 타는 불처럼 혀는 붉다(舌火). 혀 근육을 쓰는 데 산소가 필요한 까닭이다. 덜 먹고 적게 말하고 잠시나마 혀를 쉬게 하자.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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