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jwlee@uos.ac.kr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 그 발생 및 처리 과정 그리고 피해를 놓고 그동안 전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어 왔다. 거듭되는 원전 사고의 하나일 뿐이지만, 이 사고를 계기로 과거와는 다른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 확대해왔던 주요 국가들에서 이를 유보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핵 발전 비율이 31%인 독일이 이 사건을 계기로 2022년까지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58% 비율의 벨기에가 2025년까지 폐쇄하기로 결정 중에 있다. 한마디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핵 시대, 포스트-핵 시대의 문이 드디어 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탈핵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그 첫 번째 화두로 원자력,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인가를 생각해 보려한다.
원전반대 마스크를 쓴 시위대가 페센하임 핵발전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경향신문DB
오늘날 세계 에너지의 90%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 의해 생산되며, 기타 수력 등과 핵연료인 원자력에 의한 에너지는 다 합쳐야 10% 정도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원자력 에너지는 전 세계 1차 에너지 소비의 5.7%를, 전력 공급의 14%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지금까지 알려진 우라늄의 확인 매장량은 모두 약 546만9000t 규모로 주로 40여개 국가에 분포되어 있지만, 전체 확인 매장량의 93% 정도가 주로 OECD 국가인 상위 13개 나라에 집중 편재되어 있다. 우라늄 생산의 경우 편중이 더 심해 2006년 기준으로 상위 8개국이 전 세계 우라늄의 93%를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적고, 원자력이 전체 에너지 생산에 기여하는 정도도 매우 낮다. 또한 매장량과 생산량이 제한되어 있어 미래 에너지원으로서의 지속성도 떨어진다.
원자력 에너지의 경제성은 또한 어떠한가. 원자력 에너지는 우라늄 235의 핵이 둘로 분열할 때 나오는 열에너지로서, 대략 우라늄 235 원자 1g이 분열하면 석유 9드럼 또는 석탄 약 3t에 맞먹는 에너지가 발생한다. 에너지 효율만 본다면 석탄의 약 300만배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경제성이 높음을 뜻하지 않는다. 원자력 에너지의 경제성을 평가하려면 연료 사용 및 발전소 건설·운영 비용 외에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및 발전소 폐쇄 비용 등 사후처리비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데, 사실 원자력 특성상 이 부문에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가령 고체 폐기물 처리의 경우, 폐기물 여과 필터나 작업복 등 중저준위 폐기물은 300년 이상,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 핵연료와 재처리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인 고준위 폐기물은 1만년 이상 생태계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이런 시설들을 만들고 안전하게 관리하는데 얼마만큼의 천문학적 비용이 계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금 당장 생산 비용이 적절하다고 해서 사후 폐기물 처리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현 세대는 에너지를 풍족하게 향유하면서 미래 세대엔 페기물 처리의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무책임한 비윤리적인 행위가 될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의 경제성은 투입된 일부 비용 대비 에너지 효율이 아니라, 전-주기과정(life cycle)에 드는 비용 대비 에너지 효율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안전성이다. 원자력 에너지의 경우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11년 후쿠시만 원전 사고 등에서 보듯이 단 한 번의 안전사고만으로도 상상하기조차 버거운 규모의 피해와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그 손실이 어쩌면 원자력 발전이 그동안 인간에게 제공해 온 이익 전체를 이미 상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핵폐기물을 궁극적으로 재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성은 언제나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안전 문제에서는 안전 관리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인간의 행위와 직접 관련되어 있기에 단순히 과학기술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에 대한 사회적·제도적·윤리적 차원에서의 접근, 곧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이 치러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종합해 볼 때, 원자력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 되기는 어렵다. 때때로 원자력 에너지가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한다는 이유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청정 그린에너지로 선전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것이 이산화탄소 방출이든 방사선 방출이든 인간과 자연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주는 에너지라면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간주될 수 없고, 더 이상 사용되어서도 곤란하다. 그래서 이제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의 개발, 그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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