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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GMO의 사회적 합의를 위해

한동안 사회에서 고조된 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대한 우려가 잠잠해지는 분위기이다. 승인을 받지 않은 미국산 GM 밀이 국내와 미국에서 유통되지 않았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고, GMO 표시제 강화를 둘러싼 찬반 주장이 공개토론회와 매스컴에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굵직한 사안이 아직 남아 있다.



현재까지 한국은 GMO 수입국이다. 만일 우리 농토에서 GMO를 재배하는 일이 시작된다면 어떨까. 일반인에게 잘 실감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정부는 이미 GMO를 상업적으로 재배할 계획에 착수한 상태이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산 GMO의 등장에 합의할 준비가 돼 있을까.



프랑스 파리의 한 지하철역에 걸린 유전자조작(GMO) 식품에 반대하는 내용의 광고판



세계 시장에서 한국은 GMO에 부정적 견해가 강한 나라로 인식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미국 농무부(USDA)가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한국에 대한 농업생명공학보고서에는 GMO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표시제 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돼 있다. 실제로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가 매년 실시하는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GMO가 인체와 환경에 미칠 해로운 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비율은 절반에 달하고, GMO의 취급과 표시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응답률이 80%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이제껏 국산 GMO가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법적으로는 안전성을 비롯한 주요 자격요건만 갖추면 국산 GMO는 얼마든지 재배될 수 있다. 즉 국내 개발자가 정부에 GMO의 승인을 요청하고 심사위원회로부터 합격 판정을 받는다면 그때부터 상업적 재배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승인이 이뤄진 국산 GMO가 없을 뿐이다.



하지만 조만간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한국 정부는 수출용 또는 재배용 GMO를 개발할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12월7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종자산업 육성방안’에서 경쟁력 높은 GM 종자를 개발해 반도체 같은 수출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실제로 2012년 11월까지 농촌진흥청이 개발해온 GMO는 17작물 133종에 달한다. 상업화를 위해 남은 단계는 이들 GMO의 안전성 검증이다. 벼 3종, 고추 1종, 배추 1종이 이 단계를 남겨두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0년경에는 5종류의 GMO가 국내에서 재배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한국 소비자는 현재 주로 가공식품 형태로 섭취하는 GM 콩과 옥수수는 물론 GM 쌀도 자주 먹게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의 진행방식이 온전히 일방적이지만은 않다. 절차적으로 일반인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가 일부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식용 GMO의 승인을 담당하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GMO정보사이트 공지사항 코너에서 심사위원회가 합격 판정을 내린 보고서를 계속 공개하고 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수개월간 서류심사를 통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최종 평가한 품목별 GMO 보고서이다. 정부는 바로 이 단계에서 일반인의 의견수렴 기회를 마련해 놓았다. 기간은 20~30일이다. 이 단계를 거쳐야 해당 GMO 품목의 수입이나 재배가 공식 허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심사보고서는 전문용어로 가득하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보고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더욱이 사이트에는 이런 말이 명시돼 있다. “다만, 안전성 심사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이루어지므로 제출 의견은 과학적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경우에 한해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문제를 제기할 방법은 아예 없어 보인다.



유전자 변형(GMO) 식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팻말을 치켜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02~2003년 GMO의 상업적 재배라는 중차대한 이슈를 두고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합의시스템이 가동된 바 있다. 일명 ‘GM Dialogue’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의 논쟁, 과학계의 논쟁, 그리고 비용·편익을 둘러싼 경제적 타당성 연구 등 3가지 흐름 속에서 진행됐다. 물론 수많은 난관을 거친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범국민적 소통 체제가 갖춰진다면, GMO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며 정부는 국민의 신뢰감 속에 과거보다 확고한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두려면 한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적 소통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현재처럼 몇 차례의 간헐적인 찬반 토론으로는 서로의 입장을 확인만 할 뿐, 더 이상 논의의 진전이 어렵다. GMO의 최종 사용자인 일반 소비자는 물론, 농업생산자, 개발자, 식품업계, 인문사회학계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소통 구조를 마련하는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연구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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