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배우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에게 수학을 배우던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그러자 유클리드는 벌컥 화를 내며 하인을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고 한다.
“저 친구에게 동전 한 닢을 주어라. 자기가 배운 것에서 반드시 무엇인가를 얻어야 하니까.” 그러고는 질문한 학생을 쫓아버렸다는 일화가 있는데, 실제라기보다는 아마도 후세의 누군가가 꾸며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초점은 널리 알려진 이 일화의 내용이 아니라 이를 인용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의도이다. 그들은 학생의 질문에 대한 유클리드의 반응을 당연한 것으로 암암리에 정당화하는데, 바로 이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글쎄다. 그 질문이 학교에서 쫓겨날 정도로 그렇게도 불경스러웠단 말인가. 새로운 분야에 입문하면서 그 분야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수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그들에게 수학이라는 학문의 세계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그러니 수학이 어디에 쓸모 있는가와 같은 의문의 제기는 금단의 사과를 훔치려는 시도와 같이 성역을 파괴하는 도전이라 여기는 것 같다.
현대의 수학자 중에서도 수학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피력한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수학자 G H 하디다. “(나는) 수학에서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그 수학은 여타 하찮은 수학과는 달리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연구한 진지한 수학은 별 쓸모는 없지만, 유용한 학문, 즉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고 평범한 가치만 발휘하는 수학은 학문으로서 함량 미달이다….”
자신이 연구하는 수학(순수수학)만이 진정한 수학이고, 현실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응용수학은 하찮은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수학은 현실세계에 별로 쓸모가 없는 학문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 가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내가 한 발견, 또는 앞으로 하게 될 발견이 … 어떤 쓸모가 있지는 않다. 나의 어떤 발견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좋든 나쁘든 세상의 편리함이나 쓸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수학 순결주의자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하디에게 선사하자. 인용된 그의 책 는 한국에서 <어느 수학자의 변명>으로 번역됐다.
하지만 번역과정에서 순수수학에 대한 하디의 오만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면, ‘변명’이라는 단어를 apology의 번역어로 사용하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수학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든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게 마련이다. 골프의 황제 타이거 우즈는 “골프는 나 자신이다. 골프가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수많은 노력이 바로 골프에서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골프라는 운동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우즈의 말에 공감하기는커녕 참으로 어리석고 한심한 사람이라 여길 수도 있다. 넓은 잔디밭에서 자그마한 공을 막대기로 쳐서 작은 구멍에 집어넣는 그 행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도 은퇴식에서 “농구는 나의 삶 전부였다. 내가 세상과 교류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하나의 길이었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 하지만 농구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던의 말에 공감하기 쉽지 않다. 건장한 체구의 키다리 10명이 작은 공 하나를 다투면서 서로 상대방 진영에 있는 조그마한 그물 바구니에 넣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며 ‘참 별일도 다 있네’라며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우즈와 조던이 그러했듯이 아마도 유클리드와 하디는 수학을 통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그 무엇을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순수수학을 예술의 경지와 비교하는 수학 순결주의자와 같은 하디의 열정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현실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수학을 활용한다고 응용수학을 폄훼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순수수학을 한다고 하여 자신만이 순수하고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은 오염되었다고 착각하는 오만함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 근본주의자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유클리드의 수학 예찬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수학을 배워 무엇을 얻을 수 있냐고 묻는 학생에게 호통치고 내쫓기까지 하는 그의 무례함에 인내심을 발휘할 수는 없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새로이 입문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수학을 배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다.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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