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공간적 활동범위는 100년 전에 비해서 수천 배나 넓어졌지만 인간의 언어습득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이로 인하여 서로 다른 언어권의 사람끼리 만나는 일은 점점 많아지고 있어 통역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수십 개의 국가가 붙어 있는 유럽의 경우, 지역 방언까지 포함하여 통역이 필요한 언어는 무려 500종이나 된다. 특히 국제적 재난에서 언어의 차이는 또 다른 재앙이 될 수 있다. 유럽연합(EU)에서 허용된 공식 언어는 2004년 11개에서 올해에는 22개로 늘어났다. EU 사무국 소속의 통역사만도 3000명이 넘어 운영비용에만 수조원이 든다고 한다.
사람이 아닌 기계로 서로 다른 언어를 통역하는 일은 오래전 공상소설에서 시작되었다. 머레이 레인스터의 1945년 소설 <첫 만남>에는 서로 다른 우주 외계종족 간의 말을 통역해주는 장치가 등장한다. 이후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사람의 지식노동이 하나둘 컴퓨터로 대치되는 과정을 따라 자동 통역, 번역은 컴퓨터 과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계를 통한 자동 통역은 3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 단계는 음성신호를 받아서 그것을 문자로 바꾸는 일이다. 그 다음에는 그 문자를 원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며, 마지막으로 그 바뀐 문자를 소리로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여기에서 첫 두 단계가 가장 어렵다. 말을 빠르게 하거나 독특한 억양을 사용하는 경우, 또는 주변 잡음이 심할 경우에는 음성을 글자로 옮기기 쉽지 않다.
가장 본질적인 어려움은 두 번째 단계인 번역에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쓰는 모든 언어는 태생적으로 모호성과 중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 라인(line)은 직선, 인맥, 연줄, 사람들이 늘어선 줄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특히 같은 발음의 한자어가 많은 한글의 경우에는 자동 통역에 더 큰 어려움이 있다. 멀쩡한 사람들끼리도 같은 글의 다른 이해로 싸움이 벌어지는 현실을 볼 때, 모두를 만족시킬 자동 통역 시스템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통번역 솔루션이 스마트폰에 (출처 :연합뉴스)
컴퓨터를 통한 자동 번역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바로 인터넷이다. 이전에는 하나의 독립된 컴퓨터에 번역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저장한 뒤 자체에서 계산을 했지만, 지금 사용자의 기기는 음성신호를 가공하여 서버로 보내는 역할만 하고 실제 번역은 수십조 개의 엄청난 번역 예문이 저장된 중앙 서버에서 처리된다. 따라서 통역 속도는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나 빨리 보내고 받는가에 달려 있다.
요즘 실시간 통역 앱의 성능은 상당하다. 필자는 여행할 때 쓸 만한 문장 몇 개로 성능을 테스트해보았다. 한번 만에 성공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눈이 오면 버스 대신 기차를 타고 갈 예정입니다. -주문한 음식에 닭고기를 빼고 만들어주십시오. -밤늦게 여자가 혼자 다녀도 괜찮은 도시입니까? -이 동네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 한국말을 아프가니스탄 파슈토어를 포함한 12개국 말로 들려줄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정도 앱이라면 외국에서 흰색 구두약을 버터로 오인하는 비극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인터넷에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터넷 기반의 통역 프로그램은 이미 통역에 성공한 문장을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에 남들이 자주 물어보는 문장과 비슷할수록 잘된다. 예를 들어 “밥을 다 먹었으면 책상을 정리한 뒤에 학교로 가도록 해라”와 같이 외국인에게 부탁할 가능성이 없는 말의 결과는 아주 엉뚱하다. 인터넷 기반의 통역 앱은 얼마나 많은 사용자가 얼마나 사용했는가에 따라서 성능이 달라진다. 현재 자동 통역에 공을 들이고 있는 기업은 구글이다. 그들의 희망대로 5년 안에 외국 호텔, 음악회, 해외 상품 상담이 실시간 한국어 채팅으로 가능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공정하고 건강한 사회는 말과 뜻에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 바벨탑의 경우와 같이 언어의 혼란은 모든 삶의 혼란으로 귀결된다. ‘뇌물’이 ‘떡값’으로, ‘부정판결’이 ‘전관예우’라는 말로 통역되는 사회는 위태로운 사회다. 만일 정치인 말의 진짜 속뜻을 정확하게 통역해주는 앱이 개발된다면 작금의 사회적, 이념적 갈등으로 인한 국가역량의 소모를 크게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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