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환 교수 (포스텍 물리학과)
금년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은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연구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로 돌아갔다. 이 두 사람이 2004년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graphene)'을 만들어낸 업적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탄소를 한층만 뜨면 이렇게 되는군요! (Picture by Jannik Meyer)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구조로 한 층을 이루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래핀의 두께는 0.35 nm로 원자 한 층 밖에 안 되므로, 그래핀 50억장을 쌓아야 겨우 키높이가 되는 셈이다.
1947년부터 그래핀이 이론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이후 과학자들은 각종 첨단 나노장비를 활용한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제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4년 가임과 노보셀로프 연구팀은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그야말로 그래핀을 뚝딱하고 만들어 내었다. 문방구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스카치테이프'로 말이다.
스카치테이프의 위력을 강조한 광고들. 이제 그래핀이 등장해도 되겠음.
연필 심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이용되고 있는 흑연은 여러 층의 그래핀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층상구조를 하고 있는 탄소소재이다. 바로 이 층상구조 때문에 연필로 종이에 흑연의 층을 남겨 글씨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가임 교수팀은 이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뗀 후 다시 다른 스카치테이프에 10~20번 가량 붙였다 떼는 단순한 과정을 반복해 마지막에 탄소 한 층으로 이루어진 그래핀을 얻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가임 교수는 최초로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을 동시에 수상한 특이한 이력의 “괴짜과학자”이다. 그가 2000년에 이그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업적은 “개구리의 공중부양 실험”이었다. 개구리는 미세하나마 생체자기를 가지고 있다. 이 개구리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자석 위로 띄워 올려 중력과 균형을 이루게 한 것이다. 똑같은 원리로 개구리처럼 물로 이루어진 인간도 자기장 속에서 공중부양할 수 있다고 하나 강력한 자기장에 대한 경계로 아직 실험이 실제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없다.
이러한 공중부양 실험은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무중력 우주 환경의 생리적 영향 등 우주 개척을 위한 중요한 연구가 될 수도 있다. ‘먼저 웃게 하고 그 다음 생각하게 하는 연구’라는 이그노벨상의 캐치프레이즈와 딱 맞는 셈이다. 또한 가임 교수의 이러한 창의적 사고가 그래핀과 노벨물리학상 수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공중부양은 조류와 일부 파충류를 제외한 모든 동물의 꿈?
그래핀은 놀라운 물질이나 사람들의 예상보다 2-3년 더 일찍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래핀이 과학계가 꿈꾸어왔던 진정한 의미의 첫 2차원 물질로 매우 독특한 특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응용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래핀은 한 층밖에 안되어 쉽게 부서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강도가 강철보다 100배나 더 강할 정도로 안정적이다. 또한 그래핀은 실리콘에 비해 100배 이상으로 전자의 이동성이 좋고, 열전도도도 금속인 구리의 10배가 넘는다. 그 뿐아니라 그래핀은 빛의 98%를 통과시킬 정도로 투명하며 신축성이 매우 뛰어나다.
이러한 그래핀의 성질을 이용하여 기존 물질의 강도를 대폭 늘리거나, 부도체를 전기가 통하게 바꿀 수도 있고, 플라스틱에 1%의 그래핀만 섞어도 전기가 잘 통하는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 특히 그래핀은 실리콘을 대체하여 훨씬 더 빠른 속도의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고,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거나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어, 손목에 차는 컴퓨터, 둘둘 말 수 있는 전자책, 접어 보관하는 터치스크린 등 거의 모든 형태의 전자장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책가방이 가벼워질 것 같긴 한데, 좀 비치네요?
그래핀이 보여주는 마술의 근원은 탄소원자이다. 탄소(C)는 주기율표에서 원자번호가 6인 화학원소이다. 탄소는 지구에서 4번째로 많이 존재하는 가장 흔한 자원중 하나이지만, 우리 몸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원소이기도 하다.
자연에 흔히 존재하는 탄소 패밀리로서는 흑연과 다이아몬드 등이 있으며, 활성탄, 카본블랙과 같은 탄소소재는 많이 쓰이고 있으나 그리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실험실에서 풀러렌 (fullerene), 탄소나노튜브 (CNT), 그래핀 등 탄소나노소재가 잇달아 만들어지며 탄소소재가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탄소로 이뤄진 다이아몬드(왼쪽)와 흑연의 결정구조. (출처: tutorvista.com) 공 모양의 둥근 탄소구조체들(a,b,c)과 탄소나노튜브(d,e)의 구조.
1985년 처음 만들어진 풀러렌은 축구공 모양을 하고 있고, 안정적인 분자 용기로 응용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1991년 만들어진 탄소나노튜브는 둥근 기둥 모양을 하고 있으며, 나노과학의 총아로 부각되어 왔다. 풀러렌은 198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탄소나노튜브는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최근 순수한 탄소로 구성된 탄소소재는 그 무한한 응용가능성 때문에 “꿈의 신소재”로 갈수록 큰 각광을 받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0세기를 실리콘의 시대라고 한다면, 21세기는 탄소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탄소 소재의 미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5일 발표된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맨체스터대 교수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 소식은 국내 물리학계에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래핀의 '양자홀 효과'를 입증해 상용화 기술 연구의 문을 연 미국 컬럼비아대의 김필립(42) 교수 연구팀도 그동안 맨체스터 그룹과 함께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어 왔던 것이다.
김필립 교수는 “2002년부터 그래핀 분리를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마침내 10장의 원자층을 떼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상황이었다. 그는 “그 직후 맨체스터 연구팀이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논문 초고를 받아 보고 굉장히 창의적이며 단순한 방법으로 1장 분리에 성공했더라.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의 첫 노벨과학상 수상을 간발의 차이로 놓친 것이 매우 안타까왔지만, 김필립교수 자신의 말대로 노벨위원회는 "2등"에 주목하지 않은 것이다.
김필립 교수 (출처:네이버)
그래도 그래핀 분야는 김필립교수 이외에도 홍병희 성균관대 교수가 대면적 그래핀을 만들어내 상용화의 길을 열어가고, 손영우 고등과학원 교수가 그래핀 이론을 선도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한국과학자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진다. 홍병희 교수는 가로세로 약 2 cm의 휘어지는 투명필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작년 2월 저명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후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있던 그래핀은 산업계로 끌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노보셀레브 박사도 “그래핀 응용연구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고 한국의 연구수준을 극찬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탄소 이야기. 그 탄소가 만들어낸 “꿈의 신소재”의 세계.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래핀의 기초연구 뿐 아니라 상용화를 위한 세계적 경쟁이 시작되었다. 탄소소재의 미래를 활짝 열어나갈 창의적인 기초연구와 우리나라의 신진과학자에 대한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포스텍 물리학과에 재직하며 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 겸 엣지이론과학연구소 IES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하였다. 미국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 연구원, 코넬대학교 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캠브리지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카오스, 프랙탈로 시작하여 복잡계 및 뇌과학을 연구하며, 세상과 사회와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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