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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김승환의 '물리 쳐볼까'

눈송이와 리아스식 해안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프랙탈의 아버지 만델브로트, 별이 지다


  김  승 환 교수 (포항공대 물리학과)


 

지난 10월 14일에 갑작스런 비보가 날아들었다. 필자와 수 많은 사람들을 프랙탈과 카오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잡계의 신세계 연구로 이끈 “프랙탈”의 창시자 베노이트 만델브로트(브누아 만델브로)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수학자로서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프랙탈 기하학”의 아버지로서 복잡하고 불규칙적인 자연과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와 시각을 제공했다. 그는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프랙탈 홍보대사“로서 베스트셀러 저서와 수많은 강연을 통해 새로운 과학의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전파했다.

베노이트 만델브로트(1924.11.20~2010.10.14)


프랙탈(fractal)이란 말은 라틴어 “fractus(부서진 상태)”에서 유래되었는데, 1975년 만델브로트가  수학 및 자연계의 불규칙적 패턴들에 대한 에세이의 표제로서 처음 만들어 내었다. 프랙탈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규칙하고 복잡한 모양들로 고사리잎의 가지치기 모양, 구름의 무정형 패턴, 번개의 불규칙적 궤적, 해안선의 굴곡 등 다양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브로콜리 너마저... (너 브로콜리 맞니?) 뼛속 아니 세포까지 완벽한 프랙탈 구조!


이 프랙탈 모양들은 얼핏 보면 너무나 복잡하여 그 안에 아무 질서 구조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구조를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의외로 간단한 규칙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랙탈의 윤곽은 멀리서 보면 매끈해 보인다. 하지만 더 가까이 가서 보면 기존의 윤곽이 사라지고 조각난 불규칙한 구조가 새로 나타난다.

사물을 계속 확대해 볼 때  더 작은 구조의 새로운 불규칙한 모양들이 무한히 나타나는 것이 프랙탈의 한 중요한 특성이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선, 면 등 유클리드 기하체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기하학적 구조이다. 유클리드 기하체는 매끈하고 미분가능한  모양을 가진다. 그러나 프랙탈은 무한히 복잡하고 조각나고 갈라진 구조를 가진다.

한편 프랙탈은 그 속에 전체와 닮은 작은 부분들이 무한히 반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프랙탈의 대표적 규칙성은 “자기유사성”으로 프랙탈의 한 부분을 적당한 배율로 확대할 때 전체와 유사해보이는 성질이다.


삼각형에서 별로, 별에서 눈송이로... 프랙탈 중 하나인 '코흐 눈송이'


프랙탈의 다른 예로서는 분자들의 무질서운동, 눈 등 결정의 성장모습, 전기의 방전패턴,  마른 진흙의 갈라짐 모양, 철 등 금속의 금이 간 모양,  혼돈 및 유체의 난류의 패턴, 우주의 은하계의 비정규적 분포 등 분자부터 천문학적 단위까지 모든 척도의 자연계의 현상들에서 나타난다. 또한 프랙탈의 개념은 생명체에서도 흔히 관찰된다.

허파의 구조, 실핏줄의 구조, 뉴런의 구조 및 뇌의 성장이 프랙탈의 규칙성을 통해 설명된다. 또한 심장의 박동, 우울증 환자의 뇌파 등에서 복잡한 생체신호가 보여주는 프랙탈 규칙의 변화가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활용되기도 한다.

한편 프랙탈의 개념은 물리학과 생물학을 넘어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해보이는 경제와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데도 활용되고 있다. 주가와 환율의 불규칙한 등락데이터를 자세하게 분석한 결과 그 속에 프랙탈 규칙이 들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경제 현상 속의 프랙탈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반영한 지표 예측 및 대응 전략을 세우는 부분이 “복잡계 경제물리”와 “프랙탈 경영전략”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미스터리 서클도 새롭게 보이는군요.


1960년대 초 만델브로트가 불규칙한 패턴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수학적 프랙탈에 대한 단편적 이론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비정규적 형상들 사이의 관계와 그 중요성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해 이들 수학적 프랙탈들은 극히 예외적인 집합 또는 괴물들로 다루어졌다. 만델브로트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적 언어와 체계를 제공하여 프랙탈 기하학을 창조한 것이다. 만델브로트 이후 프랙탈들은 피할 수 없고, 자연스러우며,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지닌 집합으로 그 인식의 큰 전환이 이루어졌다.

선, 면 등의 유클리드 기하체의 경우 그 차원은 각각 1, 2 등 정수로 주어진다.  프랙탈의 경우도 그 차원이 정의되나 그 값은 비정수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프랙탈의 가장 간단한 수학적 예인 칸토르 집합은 선분의 가운데 1/3을 잘라내는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여 얻어진다. 무한한 점들의 모음인 칸토르 집합의 길이는 0이 된다. 그러나 프랙탈 차원은 0.631로 0차원의 점도 1차원의 선도 아닌 매우 기묘한 기하체인 것이다. 또한 만델브로트가 해안선의 모델로서 제시한 코흐곡선도 흥미로운 프랙탈이다. 코흐곡선은 선분들의 가운데 1/3을 두 배 길이가 되어 뾰족하게 튀어나오게 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여 만들어진다. 이 코흐곡선의 길이는 무한대가 된다. 그 프랙탈 차원은 1.262으로 1차원의 선도 2차원의 면적도 아닌 기묘한 프랙탈 구조이다. 우리나라의 리아스식 남서해안선도 이 코흐곡선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리아스식 해안.


프랙탈패턴의 한 특징은 무한한 복잡성으로 나타난다. 수학적 프랙탈 중 가장 아름답고 복잡한 것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된 “만델브로트집합”이다. 만델브로트 집합은 무한히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의 “백과사전”이라, 이를 찾아내고 시각화하는 작업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프랙탈은 그 무한한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자기유사성” 규칙을 이용하면 개인용 컴퓨터 (PC) 에서 단 20줄 정도의 프로그램으로도 그려낼 수 있어 지금도 호기심 충만한 아마추어 탐험가들이 이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수많은 매혹적 프랙탈들이 잡지 표지, 달력, 옷감 디자인 등 실생활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프랙탈 사진들이 과학과 예술의 접목을 통해 대중들에게 미적 즐거움도 안겨 주고 있기도 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만델브로트집합


프랙탈의 기하학적 완전함에 약간의 무질서로 파격의 미를 가미하는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가상 식물, 산, 구름, 나무, 호수들이 있는 그러나 너무나 사실적인 자연풍경을 컴퓨터 화상으로 그려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반슬리의 카오스을 이용한 프랙탈 알고리즘을 쓰면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는 숲 등 무한한 자연의 이미지들을 간단한 프로그램으로 매우 그럴듯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최근 이들 복잡한 자연의 모습에 내재한 규칙을 알고리듬화하여 용량이 큰 화상 정보의 압축 저장과 효율적 전송에도 응용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나무라고요!


가속화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프랙탈은 과학의 활용 범위를 과학자의 전통적 영역을 넘어 크게 확장해주었다. 자연과학 뿐 아니라 공학, 경제, 사회, 음악, 미술 등 다 학제간 영역의 전혀 상관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이 이제 프랙탈의 개념으로 서로 연결되었다.

앞으로 프랙탈이론과 그 응용은 어디까지 흘러가게 될 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연의 불규칙하고 복잡한 모양에 대한 만델브로트의 혁신적 이론은 물리, 생물, 수학의 자연과학과 관련 분야를 넘어 사회 전반에 되돌릴 수 없는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미래에 프랙탈의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은 자연과 사회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탐색하고 창조해나갈 것이다. 만델브로트가 우리에게 준 최고의 인셉션 - 프랙탈 - 이제 자연과 사회는 그의 언어를 통해 새롭게 보인다.




김승환 교수는

포스텍 물리학과에 재직하며 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 겸 

엣지이론과학연구소 IES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하였다. 

미국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 연구원, 코넬대학교 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 

캠브리지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카오스, 프랙탈로 시작하여 복잡계 및 뇌과학을 연구하며, 

세상과 사회와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