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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부분의 합은 전체와 다른가?

이상욱 | 한양대 철학과 교수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재료의 질일까, 아니면 그 재료를 요리하는 사람의 솜씨일까? 의견은 여러 갈래로 갈릴 수 있다. 재료도 좋고 솜씨도 좋아야 한다는 당연해 보이는 주장부터, 역시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대충 요리해도 맛있기 마련이라는 주장, 훌륭한 요리사라면 평범한 재료에서도 깊은 맛을 우려낼 수 있다는 주장까지 말이다. 브라질 영화 <에스토마고>를 보면 천부적 요리 감각을 타고난 주인공 노나토가 소박한 음식점에서 평범한 재료로 서민의 입맛을 사로잡는 요리를 만들다가 고급 레스토랑에 스카우트되어 좋은 재료의 장점을 깨닫는 과정이 나온다. 결국 노나토는 감옥에 들어가서도 로즈메리에 집착한다.

부분의 합이 전체와 같은지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럼 연필을 한 자루씩 모아 한 다스가 되면 연필이 아닌 무엇이 되는지 다시 물어보면 이번에는 뭔가 함정 질문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연필이기는 하지만…’ 하고 말끝을 흐린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부분의 합이 전체인가”라는 질문을 “부분의 합이 ‘항상’ 전체인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면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는 상황이 분명 있기에(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덧셈을 배우겠는가), 올바른 답은 ‘때에 따라 다르다’가 될 것이다.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만들 재료를 시장에서 모두 사와 장바구니에 담는다고 하자. 이 단계에서 부분의 합(장바구니에 담긴 식재료)은 전체와 같다. 하지만 이 식재료를 모두 냄비에 넣고 열을 가한다고 해서 항상 맛있는 순두부찌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경우에는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경우에도 순두부찌개의 신비로운 ‘정수’가 요리사의 손끝에서 탄생하여 오묘한 맛을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핵심은 재료를 준비하고 이를 일급 요리사만이 할 수 있는 체득된 방식으로 집어넣고 끓이는 과정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요리사의 재능은 돋보이겠지만, 기본적으로 개별 재료의 성질을 이런 조작을 통해 ‘드러낸’ 것이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결국 순두부찌개처럼 복잡한 맛을 내는 요리에서도 부분의 합은 전체가 되지 않을까?

이처럼 직관적으로는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경우조차 실은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함시키면 전체와 같아진다고 생각할 근거가 있다. 순두부찌개의 재료를 모아놓은 것이든 그윽한 맛을 내는 순두부찌개든 그 안에 들어있는 ‘물질’은 동일할 것이다. 결국 과학적으로 보면 동일한 물질이 요리과정에서 서로 복잡하게 엉켜(양념이 두부에 배어드는 식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면서 음식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일컬어 들어있는 물질이 결국 같다는 의미에서 존재론적으로 환원가능하다고 한다.

명심할 점은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현상도 존재론적으로 환원가능하다는 점을 받아들이더라도 그로부터 결국 세상만사를 과학적으로 모두 해명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 부분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확정하고 근사치라도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하거나, 많은 경우 매우 어렵다. 뉴턴 역학에서는 물체가 셋만 되어도 정확한 역학적 계산이 불가능하다. 구성성분의 개수가 아주 많아지면 통계적 기법을 사용해 현상을 이해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상호작용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근사치를 얻는 것조차 매우 어렵다.

생물현상은 복잡도가 훨씬 더 증가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해가능한 단순한 모형으로 복잡한 현상을 되도록 많이 설명하려 노력한다. 이를 방법론적 환원주의라 한다. 그러므로 환원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특별히 세상 만물을 부분의 합으로만 보려는 완고함 때문이 아니다. 과학자들의 환원주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나쁜’ 것으로 보는 세간의 경향은 이런 의미에서 문제가 있다.

사회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각자 다른 생각과 목적을 가진 개인이 모여 이루는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갑과 을의 심리와 행동을 잘 이해했더라도 이 둘이 모여 서로 교류하다 보면 둘 다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회를 연구해서 내린 결론을 발표하면 이를 듣고 사람들이 변해서 결국에는 원래 예측이 틀리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모두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원자가 모인 물체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상호작용이 있는 복잡계여서 부분의 합을 제대로 기술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을 의미하는 사례다. 교훈은 ‘환원주의’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물질은 모두 원자로 구성되고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니 세상만사가 물리학이나 생물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명백하게 오류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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