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고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의 배경은 지금부터 42년 후인 2054년, 범죄 발생을 미리 알아내는 능력을 가진 예언자를 이용한 범죄 예방 시스템 ‘프리크라임’이 도입된다. 이 영화에서 예언자는 누군가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을 예측하고 살인자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는지를 미리 알려 주어서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멀리 2054년까지 갈 것도 없이 작년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범죄 예방 사례가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다고 한다. 슈퍼컴퓨터를 제작하는 회사의 대표이사인 권대석 박사는 자신이 쓴 <빅 데이터 혁명>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11년 7월 어느 금요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쪽에 위치한 산타크루즈 도심의 어느 주차장에서 자동차 절도범 두 사람이 체포됐다. 일반적으로 운 좋게 차 주인이 자기 차나 자전거를 집적대는 도둑을 현장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아니면 자동차나 자전거 도둑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법인데 이날은 달랐다. 때마침 경찰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그 장소에서 차량 절도가 발생할 예정이다’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예측을 보고 출동했고,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범인을 잡았다. 그런데 잡고 보니 차량 절도범들은 여성들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평범해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차량 전문 절도범이라고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례에서 나오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예언자들의 예지력에 의지하고 있는 프리크라임과는 달리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동차 절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예측했다고 한다. 이 사례는 빅 데이터라고 불리는 현대 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장면. (출처: 경향DB)
빅 데이터란 과거에는 저장되지 않았거나 저장되었더라도 컴퓨터의 처리 속도나 저장 용량의 한계로 인해 분석하지 못하고 버려졌던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말한다. 빅 데이터의 대표적인 예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매일 쏟아내고 있는 방대한 데이터나 30억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돼 있는 인간의 유전자 염기서열 데이터 등을 들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됐고,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기술보다도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이제 50여일밖에 남지 않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지를 미리 알고 싶은가? 필자는 어떤 여론조사 기관보다도 네이버나 다음, 구글과 같은 검색 회사에서 더 정확하게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에서는 2008년부터 ‘구글 독감 동향(Google Flu Trends)’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독감과 관련된 검색어를 사용해 검색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그 지역에 독감이 유행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서비스는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발표보다 2주나 먼저 특정 지역의 독감 유행을 예측했다. 이러한 서비스와 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검색 엔진을 통해 유통되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빅 데이터를 모두 분석할 수만 있다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 것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빅 데이터를 다루다 보면 필연적으로 개인정보가 노출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빅 데이터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대세라고 한다. 유권자들의 개인정보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으면 개개인을 상대로 맞춤형 선거운동이 가능해지는데 이렇게 개인 맞춤형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나노 타게팅(nano targeting)’이라고 부른다. 살고 있는 지역과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소유하고 있는 차종과 구독하는 신문, 심지어는 아기에게 먹이는 분유의 종류나 종교행사 참석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유권자 개개인의 컴퓨터 화면에 각기 다른 맞춤식 배너 광고를 내보낼 수도 있다.
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일 수 있지만 누가 그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에게 득이 될 수도 있고 해가 될 수도 있다. 유권자 개개인의 정보를 분석하는 나노 타게팅도 마찬가지로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러분의 컴퓨터 화면에 갑자기 “당신이 지난여름에 저지른 이러저러한 비리를 알고 있다”는 식의 메시지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빅 데이터가 빅 브러더로 변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정책적, 제도적, 기술적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과학오디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융합 선도하는 유비쿼터스 기술 (0) | 2012.11.19 |
---|---|
과학과 사회의 변혁은 어떻게 오는가 (0) | 2012.11.11 |
탈핵으로 가는 길 (2) | 2012.10.21 |
대만의 인상적인 ‘교양 과학’ 교육 (0) | 2012.10.14 |
“변형”과 “조작” 사이 (0) | 2012.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