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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탈핵으로 가는 길

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최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위험 상황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우선 제1원전의 원자로 1~3호기에서 그동안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용융상태(멜트다운)가 지속되었는데, 지금은 한 단계 더 진행되어 녹은 핵연료가 압력용기를 뚫고 원자로 밖으로 흘러나오는 연료누출을 경고했다. 그런데 이 연료누출 현상으로 흘러내린 핵연료는 물과 접촉해 수증기 폭발을 일으키거나 심각한 경우 물과 반응하여 수소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이 폭발로 지상의 방사성 오염물질이 상공으로 올라가 기류를 타고 일본 전국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으로 오염된 막대한 양의 오염수를 태평양에 이미 버렸거나 앞으로 계속 버릴 것임을 공표했다. 바다로 유출될 경우 방사능 오염도가 많이 희석되겠지만 이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예로 미국의 핸포드 핵 재처리 시설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인근 강물에서 검출된 극미량의 방사능 오염물질이 생태계의 먹이 사슬을 통해 플랑크톤에선 2000배, 물고기에선 1만5000배, 물고기를 먹는 새에선 4만 배로 농축된다고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체내에 농축된 방사성 물질은 X-선처럼 한번 쏘이고 지나가는 것과 달리 세포에 들러붙어 지속적으로 방사선을 방출하기에 매우 위험하다. 더욱이 방사능 물질과 세포간 거리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방사선 강도는 훨씬 커진다. 이는 체내 피폭이야말로 방사능 오염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임을 말해 준다.





한편 일본 안에서는 방사능 오염지대로 설정한 후쿠시마 원전 중심의 20㎞ 권역 밖에서도 인체의 뼈에 축적돼 골수암이나 백혈병을 일으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보다 훨씬 위험한 스트론튬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방사성 물질인 세슘과 요오드가 방출되었을 뿐 아니라, 공기 중에 퍼져있던 방사성 오염 물질들이 비와 함께 떨어지는 등 토양의 방사성 오염도 점점 심해지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두 예고됐던 재앙들이다. 방사성 오염 물질들은 인근 지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공기 흡입이나 음식 섭취를 통해 방사능 물질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상태다.


먹이 사슬 안에서 방사성 물질이 고도로 농축된다는 사실은 그 정점에 있는 인간에게는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과학자들의 통계를 보면 후쿠시마의 재앙이 체르노빌에 준한다는 분석에서부터 체르노빌의 약 10배에 달한다는 분석까지 매우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후쿠시마의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앙을 보고 독일은 2011년에 곧바로 탈핵을 선언했다. 국가 차원의 17인 윤리위원회가 구성되어 8주간의 열띤 논쟁을 거쳐 2022년까지 독일의 원전을 모두 폐쇄할 것을 제안했고, 2011년 드디어 연방의회가 이를 압도적인 찬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독일이 탈핵을 선언하기까지는 30년이 넘는 매우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나라가 배우고 따를 수 있는 중요한 모범사례이므로 탈핵을 위해서는 앞으로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1986년 인근 지역인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탈원전이라는 국가차원의 선택은 어려웠다.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태양광·풍력 등의 자연에너지 기술이나 에너지 효율화 기술 등이 미약했고 관련 산업기반도 형성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건을 계기로 이후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반 기술 및 관련 산업들이 싹트기 시작했고, 결국 2000년대 이르러서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실질적인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바탕이 있었기에 독일은 후쿠시마 재앙을 계기로 탈핵을 선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독일이 이처럼 원자력 에너지에서 자연 에너지로 방향을 전환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가장 중요한 배경은 핵폐기물을 근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핵폐기물이란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한 사용후 핵연료로서 발생 방사능의 99%를 함유하고 있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그런데 이 물질을 근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은 없는 반면 이를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또 다른 배경은 안전하고 경제적인 자연 에너지가 대안 에너지로서 충분히 개발가능하고, 신기술의 적용을 통해 비용도 점점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우라늄 매장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우라늄은 120만t 정도 매장돼 있는데, 이는 현재의 원자력 발전소들이 향후 40년 정도 사용할 양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독일의 선택은 매우 합리적이고 준비된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번의 후쿠시마 재앙을 계기로 독일에서와 같은 움직임들이 싹트고 중장기적으로 에너지를 전환하는 탈핵전략이 수립되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