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믿고 운동을 안 하냐” 초절정(?) 동안에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계신 40대 중반의 모 선배가 제게 호통을 치시더군요. 봄이 된지 한참인데 감기군이 자꾸 자꾸 찾아온다고 투정을 부렸다가 밥과 야단을 함께 냠냠했더랬습니다.
이런 대화는 종종 깔때기처럼 “비타민이나 보약은 먹냐”로 이어지곤 하는데요. 그 이야기까지 갔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냉장고 속 보약 뿐아니라 보약급으로 지어놓은 비타민마저 식탁 위에서 명상 중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제게도 이유는 있습니다. 비타민 덩어리가 너무 커서 자꾸 목에 걸리는 바람에 약냄새 나는 트림과 멀미라는 부작용이 나타났으니까요.
그래도 비타민은 먹어야할까 고민하던 차에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제 모 대학 보건대학원장이신 ㅅ모 교수님께서는 “의사들 중에서도 비타민 몇십개씩 챙겨먹는 사람이 있지만, 음식을 즐겁게 먹고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시더군요. 그러면서 글을 하나 추천해주셨는데, 바로 뉴욕타임스의 온라인 블로그 WELL에 올라있는 <비타민을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소식들(News getting worse for vitamins)>였습니다.
출처: NYT
건강칼럼니스트 타라 파커-포프(TARA PARKER-POPE)가 2008년 11월20일에 올린 이 글은 온라인상에서 꽤 논쟁을 불러일으킨 모양입니다. 그녀는 비타민E와 C가 암 과 심장병에 도움을 준다는 일반적인 믿음에 반대되는 연구를 필두로, 비타민의 효용에 의문을 불러일으킨 연구들을 모아 소개했습니다.
존스홉킨스대학에서 13만5천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비타민E를 섭취한 사람들의 사망 위험이 4% 늘어났다거나, 비타민E를 매일 복용하는 사람들이 심장질환 발생 위험률이 13% 더 높았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비타민C와 감기 예방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연구도 있고요. 물론 비타민이 몸에 필요하긴 하지만, 비타민 B12나 D를 제외한 대부분의 비타민은 음식으로부터 부족량을 채울 수 있다는 주장도 덧붙입니다.
이 글에는 지금까지 총 632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비타민 과용을 반성하고 감사의 말을 남기는 내용도 많았지만, “글에 언급된 연구의 설계가 잘못되었다”라는 지적도 있었나 봅니다. “비타민업계의 연구지원을 못 받은 과학자들이 수행한 연구다”라는 추측과 “나는 비타민 먹을 때 감기가 잘 낫던데”라는 개인적 경험까지 이어졌었네요.
NYT의 건강 블로그 'WELL' 화면 캡처.
논쟁이 불타오르는 이 ‘건강한’ 온라인 블로그에서 비타민에 관한 다른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여전히 비타민의 효용에 대해 부정적인 연구결과는 쏟아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2009년 2월 보도한 “매일 종합비타민을 먹는 여성들과 아닌 여성들 사이에 유방암 등의 발생률의 차이가 없더라”는 연구 결과와 지난해 1월에는 올린 “비타민D 권장량에 대한 논란”도 수백건의 댓글을 불렀더군요.
지난해 10월에는 “비타민을 따뜻하고 습기찬 화장실 약장에 놓지 말라”는 내용이, 12월에는 “종합비타민이 잠을 방해할 수 있다”는 2007년 연구결과가 지속적으로 올라왔습니다. (아참 종합비타민과 잠의 연관성에 대해서는잠을 잘 못 이루는 사람들이 비타민을 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군요.)
최근 국내 뉴스를 ‘비타민’으로 검색해보니 비타민D 수치와 유방암, 당뇨병과의 관계에 대한 해외 연구결과를 인용한 기사들이 검색되네요. 일단은 ‘먹어야 안심이 된다면 먹는 것이 좋다’ 정도로 생각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비타민이 몸에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니 먹는 비타민제 외에 답이 없는 분들은 먹어주는 게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도 낫겠다는 겁니다. 비타민D만 해도 햇볕을 많이 쪼이면 되는 건데, 황사네 방사성물질이네 겁이 나서 밖에 나가실 수 없다면 약 밖에 답이 없을 터이고요. 혹시나, 앞으로의 연구결과들이 “비타민 복용에 득이 없다” 수준을 넘어 “해롭다”쪽을 가리키게 된다면 다시 고민해봐야겠습니다만.
p.s. 위에 소개한 NYT블로그를 잘 찾아보시면 몸에 대한 상식을 테스트하는 건강퀴즈가 있더군요. 점수가 아주 처참해서 '종종 들러야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문제 속 증상을 영어사전으로 검색해야하는 고난이 동반되오니, 놀면서 공부도 하는 1석2조 의지가 생길 때 도전해보세요. (찾아보시면 매주 올라오는 8문제짜리 최신퀴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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