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혹시 내가 비만이라면 내 주변에 비만인 사람이 많을까, 날씬한 사람이 많을까. 혹시 내가 자꾸 살이 찌고 있다면 내 주변 사람들도 살이 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비만은 혹시 전염성이 있는 것일까.
미국의 한 지역에서 친구와 형제, 배우자, 이웃으로 살아온 1만2천여명의 비만도 변화를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조사한 ‘The Spread of Obesity in a Large Social Network over 32 Years’(원문보기 클릭)를 참고하면 해답이 될 것 같다.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박사와 제임스 파울러 박사는 BMI(Body Mass Index, 몸무게를 미터 환산한 키의 제곱으로 나눈 비만도) 수치를 조사해 그림으로 나타냈다. 여기서 말하는 소셜 네트워크는 SNS로 인한 인맥이 아닌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적 관계다.
노란 원은 비만인, 초록 원은 정상인이다. 원의 크기는 BMI지수를 대변한다.
빨간 테두리는 여자, 파란 테두리는 남자이며, 동그라미들을 연결하는 선이 보라색이면 친구, 오렌지색이면 가족이다.
70년대에는 정상(초록색)인 사람이 많았지만 90년대에 올수록 비만(노란색)이 늘어났다.
30년간의 변화를 한눈에 보려면 동영상 참조. http://youtu.be/pJfq-o5nZ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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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이 비만이 된 경우 내가 비만이 될 가능성은 45%나 높았다(비만인 사람이 무작위 배열된 그룹에서 내가 비만이 될 가능성에 비해). 게다가 한다리 건너 지인의 지인이 비만이 된 경우에도 내가 비만이 될 가능성이 20% 높았다. 두다리 건너 지인의 지인의 지인이 비만이 된 경우는 내가 비만이 될 가능성에 10%의 영향을 미쳤다.
X축은 상대와 나를 잇는 선의 숫자. 1은 직접 아는 사이, 2는 한다리 건너 아는 사이다. 한다리 건너 비만인 사람이 있어도 내 비만 위험도가 확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서로가 친구라고 답한 경우는 당연히 비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한쪽이 육식을 좋아하면 같이 고기를 굽게 되고, 술친구끼리 매일 술을 푸기도 하고, 운동을 함께 하기도 하므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몸매가 닮아갈 수는 있겠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나만 상대를 친구로 생각하는 경우에도 비만이 될 위험이 57%나 증가하는데, 상대만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경우에 내가 비만이 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거다.
동성 친구는 비만도를 높였지만 이성 친구는 오히려 살이 빠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으며 (살이 빠질 가능성을 만드는 유일한 존재였다.) 동성 형제가 이성 형제에 비해 비만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비만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보다 환경적 영향이 더 크게 보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상호관계에 따른 비만 위험도 증가. 비만이 될 지도 모르는 나와 비만이 될 지도 모르는 상대의 위험률을 기준으로 해서 그런지 수치가 100%를 넘기도 함.
이 연구는 현재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비만치료가 비만인 사람의 인간관계까지 뻗어나가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화두를 제시한다. 점점 유유상종으로 살이 쪄가는 모습에서 식습관과 우정 사이의 깊은 관계에 대한 연구 또한 나올지 모르겠다. 현재 미국은 성인의 3분의 1 가까이가 비만이라고 한다.
대학 입학 이후 체중감량으로 다시 태어나기는 커녕 살을 더 찌우고 말았던 나는, 어디에 속하건 나보다 날씬한 사람들 밖에 없어 실망이 컸더랬다. 하지만 살이 잘 찌지 않는 나의 친구들이 내게 심리적 좌절은 줄지언정, 비만은 전염시키지 않을 것도 같다. 이 자리를 빌어 전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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