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드라마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매회 깨알 같은 재미와 염통을 쫄깃하게 하는 긴장으로 버무려지고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오늘 막을 내리는데요. 국민 호감 배우 독고진과 비호감 생계형 연예인 구애정이 주변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를 ‘극복~’할 수 있을지, 마음은 벌써 거름밭에 아니 TV 앞에 가있는 쏘댕기자입니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주인공 독고진은 10년 전 인공심장을 이식받았다며 손목에 심박계를 차고 다니며 심박수를 체크합니다. (사실 인공심장을 10년이나 체내에 장착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덧붙이겠습니다.) 1분에 60~90회까지는 안전구역이라 파란색이고, 90회를 넘어가면 빨간색과 경고음이 나오죠. 그런데 누군가의 휴대폰 벨소리로 ‘두근두근’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거나 그 휴대폰의 주인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심장이 안전구역을 벗어납니다. 아직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적이 없다는 독고진은 ‘심장이 뛰다면, 그건 사랑이었네’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구애정에게 구애를 하게 됩니다.
파랑은 안전, 빨강은 위험?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그런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과 뇌가 호감을 느끼는 것은 어느 쪽이 먼저일까요?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정재승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심박수 따라 색이 바뀌는 시계를 “재미로(!)” 만들게 한다더군요. 압전기(piezoelectric, 압력을 전자신호로 읽는 장치)의 원리를 이용한다는데요. 이 시계를 차고 소개팅에 나가서 시계가 빨간색으로 변하는 경우, “내가 상대를 좋아하나?” 싶어 상대의 외모가 평범하더라도 성의 있게 소개팅을 한다고 합니다. 심장(몸)의 변화를 뇌가(혹은 마음이) 따라간다는 겁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할까요
심지어 다른 원인 때문에 흥분한 심장이 이성에 대한 호감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의 아서 아론, 도널드 더튼 박사가 했던 ‘카필라노 실험’이 흥미롭습니다. 낮고 안전한 다리와 아찔한 흔들다리를 건너게한 뒤 젊은 이성이 설문조사를 부탁하면, 얼마 뒤 설문결과를 묻는 전화는 흔들다리를 건넌 쪽이 몇 배나 많았다고 합니다. 다른 일이 만든 떨림을 상대에 대한 설렘으로 오해한 겁니다. (정재승 교수는 마음에 드는 이성과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면 꼭 자이로드롭부터 태우라고 종종 조언하신다네요.)
인공심장 첫 출연 장면. 구애정이 뺨을 맞은 걸 보고 놀란 뒤, 휴대폰에서 '두근두근'이 흘러나오자 쿵쾅쿵쾅.
‘사랑해서 흥분하는 게 아니라, 흥분해서 사랑이라 믿는’ 이런 현상은 뉴욕주립대 심리학과 스튜어트 밸린스 교수의 가짜 심박 활용 실험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어느 방 안에 남성을 한명씩 데려다놓고 자신의 심장박동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주면서 플레이보이지에 한가운데 접혀 있는 대형 브로마이드의 나체여성 사진을 보여주며 매력적인 순서를 정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가 듣는 심장소리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특출한 미인 대신 평범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여인의 사진이 나올 때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듯한 소리가 나오도록 미리 녹음돼 있다면,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요?
실험자들은 대부분 가짜 심장소리가 들렸던 여인에게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심지어 실험이 끝난지 한참 뒤에도 여전히 자신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고 믿는 여성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2년 전께 EBS 다큐에서도 ‘긍정적 착각’이라는 이름으로 이 실험들을 재현했는데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놀이공원 데이트와 실내데이트를 비교한 결과 놀이공원 쪽 커플은 10커플만 실제 커플이 됐고, 가짜 심박 실험에서는 10명 중 6명이 녹음된 심박소리를 따라 호감이 가는 여성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착각을 심리학적으로는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도 설명한다네요.
<최고의 사랑>은 로맨틱코메디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바톤을 바로 이어받은 느낌입니다. 까도남 주인공과 신데렐라라는 설정이 비슷하다고도 하죠. 그런데 사실 다른 공통점도 있습니다. 두 드라마 모두 판타지적 요소가 있거든요. <시크릿가든>이야 영혼이 바뀌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등장하는 등의 비현실적 설정이 있고, <최고의 사랑>은 독고진의 “오오~ 아이언맨 인공심장”이 문제입니다.
오오 아이언맨 인공심자아앙~
인공심장은 아직 심장이식수술 전에 임시적으로 활용되는 수준이라 합니다. 2006년 개발된 아비오코르(AbioCor)라는 인공심장이 몸 속에서 가장 오래 기간이 512일이라네요. 극중 독고진처럼 10년을 버틴다면 대기록이 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인공심장이 아니라 심박동기가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긴 독고진의 롤모델 아이언맨의 인공심장은 핵융합을 활용하는 초소형 원자로로 가동된다 하니 역시나 비현실적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적 장치로 해석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모든 드라마는 SF라고도 합니다.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생물(Organism)의 합성어로 기술에 의해 능력을 강화한 유기적 생명체를 말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심박동기 삽입이나 실리콘 가슴 성형, 콘텍트 렌즈 착용까지도 포괄합니다. 성형수술도, 렌즈 착용도 흔하니 우리는 알고보면 '엄마는 외계인'은 아닐지라도 '아내는(혹은 남편은) 사이보그'인 집들이 꽤 되는 셈입니다. 어쨌건 '행복~'하면 좋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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