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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인공지능 유전자검사와 생명보험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일이 여러 관점에서 화제다.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간이 생활의 편의를 위해 만든 첨단 컴퓨터가 결국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온다는 점이 씁쓸하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활용될 분야를 보면 조만간 우리의 삶이 상당히 혼란스러워지리라는 예감이 든다. 건강관리를 위해 유전정보를 분석하는 헬스케어 분야에 구글을 비롯한 세계적인 정보기술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 사람이 타고난 유전자의 특성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유전자 차별’ 시대가 좀 더 빨리 실현될 듯하다. 유감스럽게도 유전자 차별은 부분적으로나마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36세의 한 직장여성이 생명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일이 최근 미국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던 이 여성은 지난해 9월 생명보험사로부터 가입 자격에 미달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험사 측이 문제로 삼은 점은 여성의 브라카(BRCA)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브라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80세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5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가슴과 난소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이유가 브라카 유전자의 이상이었다. 졸리는 유방암으로 모친을, 난소암으로 이모를 잃은 가족력이 있다. 미국에서 돌연변이 브라카 유전자를 보유한 여성의 수는 적지 않다. 대략 400명에 한 명꼴이다.

브라카 유전자의 상태를 스스로 검사하는 사례는 점차 늘고 있다. 간단히 유전정보를 검사해주는 서비스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유전자검사 시장 규모가 연 50억달러에 이르고, 향후 10년 내에 150억달러 이상 확대되리라는 전망도 나왔다.

건강한 여성이 브라카 유전자검사를 원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이상이 있다면 빨리 전문의와 상의하거나 스스로 몸을 잘 관리해 유방암이나 난소암이 생기지 않도록 적극 대처하기 위해서다. 특정 유전자에 발암성 돌연변이가 생겨도 평생 암에 걸리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점은 의학계의 상식이다. 유전자는 몸의 상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환경오염이나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치명적인 질환에 걸리는 사례가 흔하다.



1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 행사에서 주니치 쑤지 일본 인공지능연구소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_경향DB


그런데도 유전자검사 결과만으로 보험가입이나 직장 고용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당사자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2008년부터 시행된 유전정보차별금지법(GINA)은 사회에서 이 같은 부당한 대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취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 법이 건강보험에 적용될 뿐 생명보험 또는 신체 질환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상해보험 등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 제외 분야를 다루는 보험회사들은 가입 희망자에게 언제든 유전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검사 결과에 따라 적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2012년에는 미국의 11세 중학생이 유전자 때문에 전학을 요구받기도 했다. 소년의 유전자 상태를 판독한 결과 낭포성섬유증이라는 병에 걸릴 가능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다른 학생에게 질병이 전염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부모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과학계에서는 유전정보를 가급적 많이 수집하면서 질환과의 연관성을 대거 모색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최근까지 유전정보를 통해 검사할 수 있는 질환의 수는 1000여개에 이른다. 검사비용은 급락하는 추세이다. 한 사람의 전체 유전자를 검사하는 가격이 한때 수만달러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10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브라카 유전자 검사 비용은 250달러 수준이다.

가족 가운데 한 명이 검사를 시작하면 다른 구성원도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가령 한 남성의 누이가 브라카 유전자에 이상이 있다면 본인은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있으니 해당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인공지능은 점점 정밀하게 유전정보와 질환 간의 연관성을 예견해 나갈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질지 의문이다. 유전자 차별 현상이 사회 각 분야로 확산되는 일이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새삼 인공지능 자체보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인간의 행위가 두려워진다.



김훈기 | 홍익대 교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