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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앞얘기, 뒷얘기/임소정의 '사이언스 톡톡'

노벨상 '만년 1순위'의 비애

올 노벨 물리학상은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공동수상했습니다. 흑연에서 발견한 나노소재 그래핀의 특성을 밝힌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았다네요. 노보셀로프의 나이는 30대 중반. 과학자로서 꽤 운이 좋은 편입니다. 1900년대 초반과는 달리 누구나 인정할만한 연구결과가 나와도 꽤 오랜 시간 후속연구가 진행된 후에야 노벨상 수상의 영광이 따르는 사례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말이지요. 한편, 함께 그래핀을 연구했던 한국인 학자에 대한 아쉬움의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합니다.                                                                   임소정 기자


만년 노벨상 후보라고 하면 누가 생각나십니까? 우리나라는 고은 시인이 떠오르시겠지요. 매년 노벨상 시즌이 되면 문학담당들이 고은 시인의 집 근처에 속칭 '뻗치기'를 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은 기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16명 명 중 7명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코시바 마사토시 교수의 자서전 <하면 된다>에 따르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코시바 교수는 만년 노벨상 후보였습니다. 1987년 초신성 뉴트리노를 발견한 이래로 매년 10월만 되면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오게 된 것이었죠. 

출처: 네이버


1988년의 일이 대표적입니다. 노벨상 발표 얼마 전부터 "올 노벨물리학상은 아무래도 뉴트리노인 것 같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답니다. 과학기자들은 '뉴트리노라면 코시바 마사토시다' 생각하며 코시바 교수의 집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약 스무명 남짓의 기자들이 들어차자 코시바 교수의 부인은 이들이 밥을 굶을까봐 스시 30인분을 시켰답니다. 그러나 다들 긴장한 탓인지 차만 홀짝홀짝. 그러다 갑자기 20대의 삐삐가 동시에 시끄럽게 울려댔습니다. 본사로 전화를 건 한 기자가 미국 연구진 3명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기자들은 저마다 어색한 표정으로 코시바 교수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럼 스시 30인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웃집에 나눠줬댑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입에 침이 고입니다. 저는 고를 수만 있다면 과학자의 옆집에 살고 싶습니다.)

2002년 코시바가 노벨위원회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에도, 역시나 기자들도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코시바 교수를 비롯한 기자들도 모두 그렇게 느꼈을 법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나카 고이치를 기억나십니까? 석사과정도 밟지 않은 무명의 회사원으로서 노벨상을 수상해 전세계를 놀라게했던 바로 그 사람 말입니다. 그는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입니다. 코시바가 수상한 바로 다음날이었죠. 만년 노벨상 후보와 무명의 회사원. 언론은 어느 쪽을 더 좋아했을까요? 당연히 다나카 고이치였습니다. 일본 언론뿐 아니라 해외언론도 한동안 다나카 코이치의 이야기를 연일 대서특필했습니다. 

출처: 네이버


코시바 마사토시와 다나카 고이치, 둘 중 어느 사람이 더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낸 드라마였습니다. 슈퍼스타K2가 연일 언론의 조명을 받는 이유가 단지 "제 점수는요" 혹은 "아무리 니가 날 쳐밀도" 같은 유행어 때문이겠습니까. 새로운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이 노래가 곁들여지기 때문에 공감과 연민을 자아내는 것이겠죠. 물론 코시바 마사토시에게도 장애와 가난과 낮은 학점(?)을 극복한 드라마가 있었지만 그는 이미 저명한 원로교수였고, 그의 스토리는 아마도 많이 알려져있던 게 아니었을까도 싶습니다. 

한편 다나카 고이치는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수상자격 논란에도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의 논문도 그 자신만큼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다나카 고이치보다 두달 늦게 나온 독일 연구자들의 성과가 후속연구에 기여한 바가 더 높다는 주장에 대해 노벨위원회는 다나카 고이치가 최초 개발자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내려 주었습니다. 

노벨상의 풍경은 언제나 환호와 한숨을 동시에 자아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주로 한숨 뿐입니다만. 소립자 연구라는 이론물리학적 토대로 지속적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이웃나라 일본을 볼 때, 속칭 '돈이 된다'는 신성장동력에만 예산을 투자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계에서는 노벨상이 왜 안나오느냐고 생때부리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또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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